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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3 새해 첫날

2007/01/03 00:49

새해 첫날

몇달만에 낮에 조깅을 해버렸다. 그 동안은 줄곧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장갑까지 무장을 하고 나서 조깅을 했다. 평일에는 워낙 퇴근이 늦어서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새해 첫날이라서 그런지 늦게까지 잠을 잤는데도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하고 컨디션이 좋았다. 일어난지 채 1시간도 안되서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낮에 조깅을 해보자 는 것이었다.
바람도 잔잔했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서 조깅하기엔 더할 나위가 없었다. 다만 저녁보다 공기는 별로 좋지 않게 느껴졌다. 이론상으로는 저녁이 더 공기가 좋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평소에 주로 가던 코스말고, 오늘은 동작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호대교 밑에서 시작해서, 한남대교를 거쳐서, 동작대교를 돌아오느 코스다. 대략 5KM 남짓 될거다. 상쾌한 기분으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강가에는 오리들이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었다. 가끔씩 물고기를 잡는지 한참동안을 물속에 잠수해서 나오지 않는 녀석도 있었다. 별로 빨리 뛰지 않았는데도, 내 고개가 다 돌아가는 동안에도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오리가 잠수를 곧 잘 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전개였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잘 뛰고 있는데, 급설사가 느껴졌다. 이런 종류의 설사는, 처음에는 고통이 간헐적이다. 아주 긴 텀을 두고 고통이 찾아오다가, 점차 그 텀이 짧아진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사의 징후를 나는 대수롭게 않게 여겼다. 그 댓가는 혹독했다. 동작대교쯤 도착해서는 슬슬 이 고통의 주기가 짧아져 옴을 느끼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뛰어온 거리를 다시 뛰어가야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휴지가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한남역부근이나, 중간에 간이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지난 여름 한강둔치가 물에 잠긴 후로 확인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목표가 딱 한 군데로 정리가 되니 편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뛰는 것 밖에 없다. 빨리 뛰면 그만큼 고통을 덜 당할 수 있고, 걷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고통의 시간은 길어진다. 더구나 고통의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기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손해는 기하급수적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느덧 한남대교밑을 지나게 됐다. 그 동안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다가 생각해도 웃겨서 혼자 피식거리는 그런 종류의 경험. 순간 그 동안의 경험들 중에서 그래도 다행히 화장실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괄약근의 힘을 풀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은 내게 사치였던 걸까? 아직은 단단히 힘을 주어야 할 괄약근인데, 내가 상상했던 그 안도의 순간처럼 자기도 풀어지려 하는 것이다. 그 순간 주기는 더욱 더 짧아졌고, 이제 앞으로 1KM 남짓이 남은 상태였다. 그렇게 고통과 싸우면서 뛰었다. 옥수역에 거의 다 와서는 강변북로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쪽까지 시선을 둘까를 계산해보기도 했다. 도저히 애초 목표한 화장실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나를 완벽하게 가려줄 기둥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휴지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짓을 하기는 싫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대와 다르게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무사히 목표한 화장실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그 동안 고생을 자축이라도 하듯이 집 앞 사우나에 들러서 탕속에 몸을 담갔다.

행복은 참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금연 1일째
2007/01/03 00:49 2007/01/0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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